“우리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으세요” 발달장애 아동의 꿈을 함께 이루다 /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권정이 교수

살다 보면 자기 나이가 가물거리거나 헛갈릴 때가 있다. 올해가 몇 년인지도 깜박깜박한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 않고 뭉텅뭉텅 끊어지는 듯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기력이 부쳐야 비로소 덩어리째 잘려 나간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무심코 거울을 보다가 주름이나 흰머리가 눈에 띄면 그래서 충격적이다.

 하지만 가장 절실하게 체감하는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가 자란 모습을 확인할 때다. 기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걷고 뛰기까지 한다. 키나 몸무게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다. 전에 알던 귀염둥이 꼬마가 맞나 싶게 의젓한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때도 있다. 이때만큼은 훌쩍 지나가 버린 시간이 서글프지 않다. 성장하고 발달하는 생명의 역동성이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이다. 쇠락의 그림자는커녕
오히려 희망의 빛만 가득한 순간이다. 아이가 무럭무럭 제대로 자라는 일은 이를테면 절대선이자 지복이라 하겠다.

 

그런데 바로 그 성장과 발달이 문제인 아이들을 진료하는 소아재활이라니. 재활의학과(소아재활) 권정이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자연히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인터뷰도 어둡게
진행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것부터가 기우이고 편견이었다. 모든 아이는 눈부신 생명이고 희망찬 내일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권 교수와 말을 나누면서 새삼 깨달았다.

권정이 교수의 인상은 좋은 의미에서 유치원 선생님 같았다.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아이 자체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학식 때 아이 담임이
어떤 분일까 조마조마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내 아이의 몸과 마음을 살뜰하게 챙겨줄 선생님인 것 같으면 한시름을 놓고 얼마나 홀가분했던가. 눈을 쳐다보면서 활달한
동작을 곁들여 리드미컬한 어조로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니 더욱 권 교수가 딱 그 선생님이었다.

살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잘 키워내는 것이 소아재활의 의의,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적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권리와 기회에 주목하다.

병에 걸리면 누구라도 어서 낫기를 바랍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이가 많이 아픈 부모라면 더하겠죠. 그런데 부모에게는 치료나 완치의 의미가 다릅니다. 병마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후유증이나 장애 없이 잘 회복돼서 또래와 같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가. 성년이 돼서는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펼쳐 나갈 수 있는가. 부모의 궁극적인 관심사와 바람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미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더 절박하고 간절합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완치가 불가능하더라도 말이죠.
 
권 교수는 삶의 질을 여러 번 강조했다. 요즘 의료 현장에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터라 익숙한 표현이었지만, 삶의 질이라는 것이 장애아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하는 대목에 이르니 말의 울림이 달랐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올라설수록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지원과 혜택이 많아지겠죠. 앞으로 점점 더 복지 수준이 향상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뇌성마비 장애아가 있다고 해 봅시다. 혼자 걷기 어렵고 지능도 많이 떨어지고요. 앞으로 언젠가는 이 아이에게 하루 8시간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달 150~200만원에 상당하는 지원을 할 수 있겠죠. 지금도 거의 그 수준까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다면 정작 그 아이는 행복할까요? 부모는 마음이 놓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고 직업도 가져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해줘야죠. 물론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2~3배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영위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독립적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토대와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이것이 재활의학의 기본 시각입니다.

사실 재활의학은 갖가지 질환을 앓거나 앓은 환자들이 신체적·정신적 기능과 능력을 최대한 유지,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분야다. 환자가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주목하고 고민한다. 병이 낫거나 생명이 연장된 후의 삶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운
질과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단지 생존이 아니라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후유 장애가 남지 않거나, 남더라도 최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장애를 최소화하고 회복을 극대화해서 예전 삶으로 복귀할 수 있으면 최선이. 적어도 독립적인 일상생활이나 자유로운 거동만큼은 회복해야 한다. 바로 재활의학의 몫이자
의의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이런 재활의 목표와 개입이 처음부터 전체적인
진료 계획과 과정에 포함돼 있어야 한다
는 점이다. 소아재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뇌졸중을 겪은 성인과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소아든 성인이든 재활의 일차적 목표는 기능과 능력을 최대한 유지,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하거나 적어도 기본적인 활동과 생활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말이죠. 따라서 성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원상회복을 해서 일상과 사회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좀 다릅니다. 더 특별하죠. 그냥 회복되고 복귀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아에서 청소년까지는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그 과정이 제대로 진행돼서 장차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가정과 또래 집단, 학교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내고 나중에 자라서는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커나가는 것이 문제인 거죠. 말하자면 살려낼 뿐
아니라 키워내야 합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재활의 잣대인 거죠. 아이들의 경우는 회복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 복귀가 아니라 진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아이들의 뇌,

발달지연이나 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핵심

조기 소아재활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한 대목에 이르자, 권 교수는 여러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발달지연이나 발달장애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왜 필요하고 중요하냐면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민감한 시기결정적 시기입니다. ‘민감한 시기’란 특정 환경 자극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의 아동은 특정
능력 발달에 최적의 반응을 보입니다. 특정 능력이 발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죠. 반대로 이때를 놓치면 가능성이 떨어지겠죠. ‘결정적 시기’는 특정 행동과 특성이 잘 학습되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에 적절한 환경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때를 놓쳐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늑대소년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례죠. 적절한 환경과 교육이
결정적 시기에 제때 제공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흔히 머리는 타고난다고들 하잖아요. 인지 능력은 이미 100% 유전적으로 결정됐다면서
말이죠. 그건 오해입니다. 유전 정보는 이미 결정됐지만 이를테면 소프트웨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피아노를
배울 때 누가 더 빠른가요? 당연히 어린이죠. 왜 그럴까요? 뇌는 태어나서도 계속 발달합니다. 2세가 되면 뇌신경세포의 연접이 성인의 2배까지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시냅스가 오히려 줄어들어요. 일단 많이 만들어놓고
자주 사용하는 시냅스만 남기고 필요 없는 부분은 차츰 없애는 거죠. 후천적인 경험과 학습에 따라 뇌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듯 뇌는 태어날
때 미리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유연하고 변화무쌍하죠. 바로 이것이 두 번째 근거인 뇌의 가소성입니다. 무엇보다 가소성은 어릴수록 높습니다. 그래서 조기 재활이 중요합니다.

 

가소성(plasticity)은 말 그대로 플라스틱의 성질로서, 마음대로 모양을 빚을 수 있는 유연한 적응성이다. 즉 뇌의 가소성은 자극과 학습에 의해 새로운 신경이 자라거나
신경 경로가 변하고 재조직되는 현상이다. 이런 이유로 뇌신경재활의 원리로 활용된다.

 

“소아 사시 환자들의 경우 사시가 있는 쪽은 초점이 안 맞으니까 정상 쪽 눈으로만 보게 됩니다. 그러면 사시가 있는
눈은 계속 사용하지 않아서 점점 더 나빠집니다. ‘학습된 비사용’이라고 하죠. 문제가 있으니까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니까 더욱 악화됩니다. 이런 경우 재활치료에서는 정상 눈을 가립니다. 편중된 사용을 억제하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쪽을 활성화하려는 것이죠.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의 이상으로 편마비를 겪는 환자들은 그쪽 팔의 사용이 실제
뇌손상 정도에 비해서 과도하게 적습니다. 이 경우에도 정상인 팔을 묶는 치료를 합니다. 사용하지 않던 쪽을 관장하는 신경 경로를 재조직, 활성화하려는 거죠. 이런 원리에 따라 뇌성마비
아이들을 치료했더니 4주 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김연희 교수님과 같이 학술지에 발표도 했는데요. 시냅스가 새로 형성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 보이던 것들이 튼튼하게
연결돼서 끝까지 이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추신경에서 손으로 내려가는 연결성이 좋아진 거죠. 아이들의 뇌는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구나. 뇌 구조까지 변할 수 있구나. 조기 소아재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첫째, 결정적 시기의 아동에게 제대로 된 자극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달지연 아동이라도
초기에 충분한 강도로 재활을 한다면 인지 발달에서 뚜렷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둘째, 뇌의 가소성은 적절한 치료만 결합되면 편마비 환자의 뇌신경 회로도
변화시킨다. 그리고 뇌의 가소성은 연령과 상관이 있으며 어릴수록 높다. 따라서 조기 소아재활은 반드시 필요하고 아주 중요하다.

“단지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독립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게끔 지지와 격려를 많이 합니다. 학업이나 교우 관계 등 학교생활을 잘하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요. 그러면 반장이나 회장
선거에 나가보라고 권유를 하죠. 실제로 당선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반에서 1등은 일일이 꼽을 수 없는 정도고 전교 1등도 한둘이 아닙니다. 진짜 잘하는 경우는
제 개인 SNS에 남겨둡니다.

권 교수는 스마트폰을 꺼내 한참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는 창가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앙증맞은 지점토 작품이 진열돼 있었다.

“어때요, 예쁘죠? 이걸 만든 아이는 손 힘이 굉장히 약해요. 손으로 뭘 하는 것이 힘겹죠. 바지 지퍼를 스스로
올릴 힘도 없어요. 하지만 이걸 이렇게 잘 만들었어요. 미세한 동작은 조금 되거든요. 예뻐 보여서 제가 달라고 했어요. 소아재활은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어요.

정확한 진단과 평가, 전체적인 진료 계획과 목표가 중요,

모아집중치료센터와의 협진으로 좋은 치료 성적을 거두고 있는 조기 재활 프로그램

환아 말만 나오면 절로 함박웃음을 짓는 권 교수에게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먼저 권 교수의 진료 분야와 환자 구성을 물었다.
 
소아재활은 말 그대로 연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까, 소아에서 청소년까지 환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봐요. 뇌성마비가 대표적이지만, 수두증(뇌실이나 거미막밑 공간에 뇌척수액이 지나치게 많이 괴어  부분이 확대된 상태) 기타 뇌질환부터 사경(목의 일부 근육이 뒤틀려 머리가 한쪽으로 기우는 증상. 기운목), 척추질환 환아까지 다 진료합니다. 뇌 수술이나 정형외과 수술 후 환자들도 보고요. 지적 장애 아이들도 처음에는 발달지연이나 운동 장애로 병원에 옵니다. 그리고 미숙아 등 고위험 신생아의 평가 및 추적 관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비율로 말하자면 모아(母兒) 집중치료센터의 고위험 신생아가 30%, 뇌성마비 환자가 30%, 수술 재활이나 기타 환자가 40% 정도 됩니다. 외래는 주로 뇌성마비 환아들입니다. 경직을 줄여주기 위한 보툴리늄 독소(보톡스) 주사 치료를 많이 하는 편이죠.
 
뇌성마비는 소아의 미성숙한 뇌가 손상돼서 운동과 자세의 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을 말한다. 신경계가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발생하는 소아마비와는 다르다. 뇌손상이나 뇌병변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지만 운동 장애는 성장하면서 계속 유형이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운동 장애를 일으키는 뇌병변이 다른 여러 장애를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 지적 장애, 경련, 시각 장애, 청각 장애, 삼킴 장애 등이 흔히 동반된다. 뇌성마비는 마비 부위와 이상 운동의 양상에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뇌병변 자체는 영구적이고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한 2차 증상은 치료할 수 있다. 재활 치료와 주사 치료 등을 시행하는데, 나중에 경직이나 통증을 완화하고 자세를 교정하기 위한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6~7세에 한 번, 그 다음에는 11~12세 정도에 하게 됩니다. 수술은 정형외과 심정숙 교수님이 담당하십니다. 그 나머지 기간에는 계속 재활 치료, 보조기 치료, 주사 치료를 하죠.
 
설명을 듣다 보니, 딱히 수술이 아니라면 계속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물론 모든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 계속 다닐 필요는 없어요. 우리 병원에서 감당할 수도 없고요. 정기적인 재활 치료는 다른 재활병원이나 재활센터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고요. 그런데 정확한 진단과 환자·보호자 교육에 초점을 맞추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이 아이의 상태와 예후가 어떠하고, 지금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미리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평가와 진단을 정확하게 하고, 전체적인 진료 계획과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겠죠.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언제 어떤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하며, 치료가 어떤 단계로 진행된다는 등 장단기 목표와 일정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병원이나 센터와 연계해서 치료를 진행하기도 쉽겠죠. 그런 점에서는 우리 병원만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권 교수의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방송에 소개된 유명 맛집들의 딜레마가 떠올랐다. 갑자기 손님들이 마구 몰리다 보니 예약, 대기시간, 서비스를 두고 오히려 불평불만이 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재활 치료라는 것이 3분 진료나 공장 시스템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고민이 짐작됐다.
 
사실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찾는 데는 심리적인 이유도 있어요. 외래 환자들은 다른 곳에서도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도 굳이 여기에 오는 이유는 왠지 불안하기 때문이죠. 부모 마음이 그래요. 지금 다니는 곳에서 최상의 진료를 받고 있는지, 계속 거기만 믿고 있어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죠. 아무래도 삼성서울병원에 오면 최신 정보나 새로운 치료법을 접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고요.
현실적으로 삼성서울병원이 맡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요. 바로 중환자죠. 조금만 만지거나 움직여도 산소포화도가 뚝 떨어지거나 경기를 하는 등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질환의 난치성과 별개로 말이죠. 일반 병원에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아이들을 그냥 집에만 둘 수는 없잖아요. 역시 재활치료를 해야죠. 결국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위급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병원에서 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환자들은 우리 병원에서 데리고 있어야죠. 미숙아, 신생아, 항암 치료 받는 아이, 아주 심한 질환을 동반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삼성서울병원의 강점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안전성과 치료의 질이죠. 다양한 중증 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진료하면서도 큰일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제가 여기에 온 지 8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전혀 없었어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 협진 시스템이 그만큼 잘 갖춰진 거죠. 재활의학과도 내부적으로 계속 QI(Quality
Improvement)
를 진행하고 매주 만나서 토의와 교육을 하고요. 특히 우리 치료사분들이
아주 잘해요. 그건 엄마들이 가장 잘 아세요.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들은 객관적으로 관찰하잖아요. 그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비교를 하고요. 아이에게 30분간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운동하도록 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만하기 그지없는 서너 살짜리 아이를 말이죠. 대단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유도할 수가 없어요.

다음으로 모아 집중치료센터를 강점으로 꼽았다.

“우리 병원의 모아 집중치료센터는 원래 유명하죠. 산전 검사를 해서 문제가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조기에 치료를
제공해요. 미숙아나 초미숙아 등 조산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조기 재활 프로그램으로 좋은 치료 성적을 거두고 있어요. 조산아 케어와 조기
재활을 워낙 잘하니까 생존율도 높아지고 관련 질환의 비율이나 중증도가 줄고 있어요. 초미숙아라도 뇌성마비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아요. 발달장애, 지적 장애, 시력·청력 장애 등이 더 많은 편이지만 그것도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적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거죠.

‘혹시나’라는 말이 나온 김에 ‘늦된 아이’에 대해 물었다. 아이의 발달이 느린 것 같아서 혹시나 하다가도, 늦된 것뿐이니 유난떨지 말라는 주변의 말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갔더니 진짜
그렇다고 할까봐 두려워서 더욱 주저하게 된다.

“내시경 검사와 비슷해요. 생각하면 무섭잖아요. 그래도 빨리 하는 게 도움이 되죠.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한 평가와 진단이 내려져야 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영유아 검진에서
의심소견이 나와도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유치원에서 언어 발달이 느린 것 같다는 평가를 들어도 나중에 좋아지겠지 하면서 그냥 두기도 하고요. 안타까워요.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더디고 어렵거든요.

무신경한 것도 문제지만 지레 겁부터 먹을 일도 아니라고 한다. 일단 전문가부터 찾아가라는 말이다. 그러면 전문가는 누구인가?

“발달 평가는 소아재활 전문의가 아주 정확하게 볼 수 있어요. 일반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발달을 전문적으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소아재활 전문의가
아이를 보면 대운동 발달은 몇 개월, 소운동 발달은 몇 개월, 인지 발달은 몇 개월 하는 식으로 바로 평가하고
판정할 수 있어요
. 문진과 진찰로 알 수 있습니다. 영상검사 등을 하지 않아도 말이죠. MRI를 찍는다고 발달지연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금시초문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소아재활도 낯선데 거기서 발달 평가와 진단까지 한다니. 소아청소년과 등에서 판정과 진료를 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보조적으로
재활치료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렇죠. 대다수가 잘 모르세요. 학회이름을 소아재활·발달학회로 바꾼 데는 그런 이유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병원에 오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저에게 많이 올 수밖에 없어요. 아이의 뇌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발달지연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운동 발달이 느려요. 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 발달이 느리다고 병원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심각한 발달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어느 한 영역에만 지연이나 특이 사항을 보이지 않고 여러 영역에서 이상을 나타내요. 포괄적이고 통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소아재활 전문의가 늘 트레이닝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에요.

생후 100일 내 뇌성마비를 진단해 조기 재활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

희망을 가지세요. 우리 아이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의 증거가 계속 나올 겁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 놀라웠다.

 

뇌성마비의 조기 진단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발달지연이나 뇌성마비를 누구 못지않게 빨리 발견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목표는 생후 100일 내에 뇌성마비를 진단해서 조기 재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아 집중치료센터의 고위험 신생아나 미숙아
중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환자를 생후
3개월 때 발견해서 치료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권 교수는 새로운 치료법 연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승마치료.

 오래 전부터 삼성전자 승마단과 같이 승마치료를 진행해 왔습니다. 주로 뇌성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요. 운동기능과 균형감각, 집중력의 향상에 효과가있습니다. 아이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고요. 관련 논문도 몇 편 발표했고 연구도 많이 앞서가고 있어요. 김연희 교수님과 함께 한국재활승마학회도 만들었습니다. 창립 2년째죠. 제가 세계재활승마협회 임원까지 맡고 있어요. 앞으로 세계재활승마대회를 유치하는 것이 중장기 목표입니다. 연구도 계속 해나갈 생각입니다.

 끝으로 권 교수는 환아 부모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제가 부모님들께 늘 말씀드리는 건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대부분은 벌어지지 않고, 발생하더라도 사소한
것들이 많습니다
.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될지 처음부터 너무 걱정하시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으면 반드시 좋아집니다
. 아이들은 뇌가 계속 발달하고 가소성이 높기
때문에 더 많이 좋아집니다
.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경우를
한 달에 몇 번씩이나 봅니다
. 아니, 매일 매일이 기적인 거죠.
뇌신경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는 오랜 통설도 뒤집혔잖아요. 새로운 희망의 증거가
계속 나올 겁니다
.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 아이들이 메아리처럼 귀에 맴돌았다. 권정이 교수가 그 말을 수없이 반복한 덕분이다. 조금 천천히 갈 뿐, 우리 아이들도 자기 꿈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 삼성서울병원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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