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아의 삶과 부모의 눈물까지 보듬다/소아암센터 이지원 교수

소아암 환아의 삶과 부모의 눈물까지 보듬는 수호천사
소아청소년과 이지원 교수


아이를 기른다면 누구라도 그렇다. 열이라도 나면 자기가 불에 덴 것보다 백배 천 배는 아프고 경황이 없는 법이다. 아이 무릎에 생채기만 나도 흉이 남을까 속이 쓰리다. 부모라면 알 것이다. 평균수명까지 사는 동안 셋 중 한 명은 암에 걸리는 세상이라지만, 아이와 암은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것을 말이다.
 
소아암이라는 말이 대체 가당하기나 한지 상상만 해도 기막힌 일이니, 뭔가 말을 해줄 전문가를 만나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전문 분야가 소아혈액종양인 소아청소년과 이지원 교수를 찾아갔다. 이지원 교수는 작년 9, 삼성서울병원으로 새로 자리를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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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암과 종류와 성질이 완전히 다른 소아암
삼성서울병원이 유일하게 고형암과 혈액암으로 분야를 나눠 치료

“소아암은 발병률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소아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암 발생이 드물어요. 주로 발생하는 암의 종류와 성질도 완전히 다릅니다. 암은 혈액암과 고형암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대표적인 혈액암은 백혈병이죠. 같은 백혈병이라도 소아와 성인이 달라요. 빈발하는 종류도 다르고, 특성과 예후도 다르죠. 백혈병이나 다른 혈액 질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형암이에요. 소아에게 발생하는 고형암도 성인과 달라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암, 폐암, 대장암 등이 아니에요. 소아에게 잘 생기는 고형암은 따로 있죠. 뇌종양과 신경모세포종이 가장 많아요. 육종 계열이나 기타 종양들은 환자 수가 적은 반면 종류가 많고 복잡해 고형암으로 통칭하는 편이 쉬워요. 어느 것이든 절대적인 수는 적은 편이지만, 소아암은 급성 백혈병이 가장 많고, 뇌종양, 림프종, 신경모세포종 등의 순서로 빈발합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혈액종양내과와 달리 소아혈액종양은 일반적으로 혈액암과 고형암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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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혈액종양을 혈액암과 고형암으로 분야를 나눠서 진료하는 병원은 아마도 삼성서울병원이 국내에서 유일할 겁니다. 저도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소아혈액종양 질환을 전반적으로 다 봤습니다. 실은 발병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웬만한 병원에서는 나눌 수가 없어요. 의료진도 어느 정도 확보돼야 하니까요. 그런데 삼성서울병원에서는 힘든 가운데 과감하게 나눈 거죠. 그런 만큼 전문성이 더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종류와 병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소아(고형)암은 완치율이 70% 정도 된다고 한다. 이것도 성인암과 다른 점이다. 성인보다는 낫는 비율이 높다.
 

일단 소아청소년과에서 진찰을 한 후, 고형암 진단이 내려지면 성인과 마찬가지로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 등 3대 암 치료가 시행된다.
 
항암치료는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직접 맡는다. 성인에게 하는 항암 프로토콜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고, 소아에게 특화된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와 수술은 각각의 파트에서 소아를 전문으로 보는 의료진이 담당한다.
소아 고형암이 발병하는 부위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소아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비뇨기과 등 많은 진료과의 소아 전문의와 협력이 필수다.
 
특히 방사선 치료에 있어서는 이번에 삼성서울병원에 도입된 양성자 치료에 거는 기대가 크다. 양성자 치료는 종양 주위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부작용과 합병증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아주 적기 때문이다.
 
소아는 치료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생존뿐 아니라 앞으로 삶의 질도 고려해야 하죠.  최소한의 기능 회복이나 독립적인 일상생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걸 말하죠.
 아이들은 계속 성장 발달해야 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주 길잖아요.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신체적인 후유증을 안 남기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후유증도 안 남기고 학업도 따라갈 수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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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환자와 보호자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던 시간
아이들을 떠나 보낼 때 진마음의 빚을 최선의 치료로 꼭 갚을 것

질환의 특성과 치료 방법, 예후 등이 성인과 확연히 차이 나는 소아암.
환자와 보호자의 특성 또한 매우 다르다고 한다.

“소아암 환자는 두 부류예요. 어린아이와 청소년으로 나뉘죠.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데 잘 몰라요. 아이가 어린 경우 부모님이 정말 많이 힘들어해요. 삶 자체를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잖아요. 청소년 환자는 우선 본인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해요. 친구들과 달리 자기 혼자만 궤도에서 이탈했거나 낙오한 것 같고. 보호자도 힘들지만 본인이 가장 힘들어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이지원 교수 역시 엄마의 입장에서 보호자를 바라볼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제가 마음이 약해서요. 보호자를 보면 그래요. 그런데 위로의 말씀을 드리기는 무척 조심스러워요. 보호자 입장에서는 형식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처음 진단을 받은 아이의 보호자에게는 주로 이런 말씀을 드려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발생했으니 돌이킬 수가 없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고민해봐야 알 수도 없으니, 지금은 어떻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것인가.’에만 집중하자고 말이죠.
걱정과 고민은 의료진에게 모두 맡기시라고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보호자가 대범하게 빨리 받아들이면 아이들도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많고, 보호자가 계속 울면서 걱정을 하면 아이들도 아주 힘들어한다는 말도 덧붙이죠.
 
아이의 치료를 위해 늘 이성적이고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이지만, 힘들어하는 아이와 부모를 볼 때마다 의료진으로서도 많이 힘들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 전공이 무슨 생각에서 재미있어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는 게 힘들고 아이를 보낸 보호자 보기도 괴로웠어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그렇게 몇 년을 계속하고 나니까 이제는 그동안 보냈던 아이들에 대한마음의 빚……
 
마음의 빚이라고 말할 때 깊은 떨림이 느껴졌다. 마음의 빚이라는 말에 모든 감정이 응축된 것 같았다.

“사실 소아암 환자는 수가 많지 않아서 한 명 한 명 다 기억이 나요. 치료하던 아이들을 하나 둘 떠나 보내면 항상 후회가 남죠.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저렇게 해봤으면 달라졌을까하고 말이죠. 항암 치료를 하고 보냈으면 괜히 더 힘들게 한 것이 아닐까하고, 하지 않고 보낸 아이라면 한번이라도 더 해볼 걸 그랬나해요. 어떻게 해도 후회는 남더라고요. 치료를 해도, 안해도 떠나 보낸 아이들 앞에서는 늘 후회가 돼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후회와 미안함 때문에라도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아이들을 통해서 그만큼 배웠고 그런 모든 경험들이 나한테 축적됐는데 그걸 버리고 그냥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된다는 거죠. 내가 그것 때문에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마음의 빚은 갚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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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아암 완치잔치에서 보호자와 함께

|불응성 고형암 치료에 기여하고 싶어
아이의 짧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소아 완화의료에 관심

진료와 연구에서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는지 물었다.

일단은 표준적인 치료가 잘 듣지 않는 불응성 고형암의 치료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고 싶어요. 삼성 유전체연구소가 있으니까 그런 방향으로 여러 가지를 모색해 볼 생각입니다. 성인 연구와 달리 소아 쪽은 아직 종양유전체나 이런 연구들이 세계적으로도 미흡한 수준이거든요. 아직 젊으니까 그런 연구를 통해서 난치성 소아암의 치료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데 기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아주 먼 훗날에 도전하고픈 분야로 이지원 교수가 꼽은 것은 소아 완화의료(palliative care).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이 교수의 마음 씀씀이를 떠올린다면 그리 놀라운 선택은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로서도 아직 시기 상조이고 제 역량도 지금은 안 되지만, 은퇴할 무렵이 가까우면 관심을 갖고 해 보고 싶어요. 사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일정 비율의 아이들은 떠나 보낼 수밖에 없어요.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하고, 재발해서 안 좋아지다가 결국 떠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호자 혼자서 감당하기는 너무 힘들어요. 호스피스와는 조금 다른데, 사실 여러 분야가 포함된 개념입니다. 한 마디로 아이의 짧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치료를 받다가 금세 떠나가는 아이를 보면 이 세상에 왔던 의미가 무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아무리 짧더라도 의미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보호자와 같이 말이죠. 보호자 혼자서 버티기가 너무 힘드니까 함께해 주는 거죠.

실은 먼 미래의 꿈도 아니었고, 완화의료 자체가 핵심이 아니었다.
 
“삼성서울병원에 와서 느낀 것인데요. 설령 다양한 분야의 여러 선생님들이 참여하는 완화의료가 아무리 잘 돼 있다고 해도, 주치의가 환자에게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의사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만큼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적 안정에 좋은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삼성서울병원 소아암센터 교수님들과 환자나 보호자의 라뽀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의사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으니까,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아서 아이가 잘못되더라도, 이 의사를 만나서 이런 최선의 치료를 다했고 따라서 후회도 원망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와 부모님에게 의사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이지원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 와서 느낀 바를 여러 번 강조했다.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첫째로 교수님들께서 정말 열심히 환자를 보시는 것 같아요. 환자를 가장 우선으로 해서 진료와 연구를 하시고,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면서 밀접한 관계도 맺으시고요. 임상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려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진정성 있는 연구를 해야 되고, 환자와 라뽀도 좋아야 하는데, 그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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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협조와 협력이 잘 돼서 놀랐어요. 내 일 네 일이나 영역을 따지지 않고 정말 환자를 위해서 꼭 필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각 과의 선생님들이 서로 협력하고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이 곳의 보호자 분들을 보면 어떤 상황이든 비교적 차분히 수용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치료 과정에서 생길 법한, 또는 아이를 떠나 보내고 난 이후에도 어떤 뚜렷한 원망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어째서 그럴까 생각해보니, 중요한 타이밍마다 의사가 아주 충분하게 설명한 후에 보호자랑 상의해서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 덕분이 아닐까 해요. 지금 무슨 치료를 받아서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으니까.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도 있고, 보호자에게 위로와 격려도 아끼지 않으니까 당연히 라뽀도 굉장히 좋겠죠. 안 좋은 결과라도 순순히 받아들이게끔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정말 대단한 의사라야 가능한 이야기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이지원 교수는 포부를 묻는 질문에 아주 소박한 듯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답변을 내놨다.
 
“아주 큰 것을 이루겠다는 것보다는, 굉장히 힘들어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저를 만나서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고 도움을 받았으면 해요. 아무래도 치료가 잘 안 되는 아이들이 더 마음이 쓰이겠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후회를 남기지 않았으면 해요.

내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떨구는 의사, 따뜻한 위안의 손길을 내미는 의사,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치료를 다하겠다는 의사. 이지원 교수를 만나고 의사라는 직업의 무게와 진가를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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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진료실 책상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사탕, (우) 치료중인 환아가 그려 선물한 그림과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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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아암 완치잔치에서 유건희 교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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