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아니라 환자를 본다” 로봇수술하는 원칙주의자 / 삼성서울병원 소화기외과 배재문 교수

 

“명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명의는 없다’ 주장하는

원칙주의자, 소화기외과

배재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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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명의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의사치고 환자에게 도움을 안 주는 경우가 있을까요? 아픈 환자를 치료하면 다 도움을 주는 겁니다.감기 환자에게는 동네 병원 의사가 명의인 거죠.

 

 

배재문 교수의 화려한 경력과 치료 성적을 생각하면 위암 명의라는 칭호를 많이 들어왔을 법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배 교수는 명의의 기준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는, 기대와 다른 말을 했습니다.  

 

■■■■“가령 남들은 수술 성공률이 60~70%인데 반해 나는 그보다 훨씬 높은 90%라고 합시다. 이러면 보통 명의라고 부르죠. 그런데 나머지 10%에게도 제가 명의일까요? 제대로 된 의사라면 그 10%에게 항상 미안해하고,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제 환자 중에서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한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병 자체가 진행돼서 사망한 경우는 있지만 말이죠. 하지만 제 자신을 명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합병증으로 고생했거나 재발해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죠. 의사라면 선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다른 가능성은 없었는가, 이런 자세라야 연구와 발전의 여지가 있습니다. 10%는 원래 사망할 수밖에 없고 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면, 도대체 뭐가 나아질까요?”

 

의사와 환자 사이는

거래관계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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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거래관계가 아닙니다. 같은 병이라도 더 어려운 환자가 있잖아요. 병변의 상태와 위치가 다르고, 여러 질환이 동반할 수도 있고 말이죠. 저를 찾아오는 환자는 대부분 심각한 경우입니다. 쉬운 환자를 치료할 때와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죠. 하지만 양적으로는 그냥 수술 1건일 뿐입니다. 고도의 술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이를테면 가격이나 실적에 반영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대충 하거나 반만 할 수는 없잖아요.

 

분명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의료는 거래관계가 아니라고 하는 말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치료가 다 그렇지만 특히 암 수술은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학적 판단에 입각한 치료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거죠. 목숨이 달렸는데, 환자가 조금만 절제해 달라,어떻게 해 달라 요구한다고 그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깊게 해 달라, 얕게 해 달라는 쌍꺼풀 수술이 아니니까요. 의료 분야는 특수합니다. 환자가 올바른 정보를 접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죠전문가의 비거래적인 객관적 조언이 필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언뜻 들으면 전문가인 의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면 환자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환자 만족을 우선으로 하는 요즘 경향과 동떨어졌다는 인상마저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이는 오해라는 것이 곧 드러났습니다.

 

 

■■■■“환자가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대학병원은 이 부분이 미진하기 쉬운데, 저는 환자와 가족에게 수술 전후로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환자 상태가 어떠하며,치료 방침이 무엇이고, 수술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사진과 영상까지 다 보여주면서 설명합니다.

 

설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배재문 교수님은 한 발 더 나아가 환자의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환자도 궁금한 부분은 의사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궁금하면 물어야 하는데 환자가 오히려 질문을 안 하기도 합니다. 원하지 않는 답변을 들을까 봐 피하는 거죠. 그리고는 다른 곳에 가서잘못된 이야기를 들어요. 특히 암환자들은 본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듣습니다. 제가 현재 질환의 상태와 치료로 인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면 결국 싫은 얘기만 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죠.

 

의사에게 목숨을 맡기는 암수술에 있어서는 신뢰가 필수적입니다. 그렇다고믿으라고 해서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신뢰가 형성되려면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이뒷받침돼야 하고, 환자도 입과 귀를 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천 례의 개복 수술과

복강경 수술…

여기에 로봇수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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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문 교수가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세태를 거스르고 완고하게 고집을 부린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배 교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의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제 나이에 위암 로봇수술을 하는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저를 포함해 거의 1~2명 밖에 없습니다. 복강경 수술까지는 어떻게 하지만 로봇수술은 안 합니다. 이미 수천 례의 개복 수술과 복강경 수술을 한 마당에 로봇수술을 다시 익힌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저처럼 세 가지를 모두 해내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면 힘들고시간도 많이 걸리니까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경력이 되면 선뜻 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굉장히 원칙을 고수하는 모습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최신 경향을 받아들였으니까요.

 

■■■■“제가 볼 때 로봇수술이 수술의 미래입니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습니다. 개복 수술에서 복강경으로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식을 바꿔야죠. 저는 로봇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금이야 그 단계를 넘어섰으니까 뭘 어떻게 수술하더라도 편하지만 저도 처음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해야 하면 하는 거죠.그것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말입니다.

 

게다가 배재문 교수는 개복 수술, 복강경 수술, 로봇수술을 비교했을 때 로봇수술의 이점이 분명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비용 문제만 제외한다면 기술적이거나 치료적인 면에서 장점이 큽니다. 3차원 확대 화면에 미세하고 정밀한 조작도 가능합니다. 통증이 적고 회복도 빠릅니다. 무엇보다 림프절 청소에유리합니다. 위암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변 림프절 청소인데 복강경은 기계적 한계 때문에 제대로 하기 쉽지 않습니다. 직선형인 복강경과 달리 로봇은 손목관절처럼 조작이 가능하고 화면도 3차원 입체에다 훨씬 크고 정밀합니다. 장을 꿰매서 연결하기가 아주 수월해요.

 

 

최신 지식과

최첨단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좋은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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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다짐하고 후배 의사에게도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실해야 한다는 거죠. 환자를 보는 것뿐 아니라 공부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최신 지식과 최첨단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환자에게 최선의 수술을 해줘야 하는데 자기가 습득을 못 해서 그러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게다가 자기가 수술했으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면 안 되죠. 책임을 지려면 게으를 수가 없어요.

 

배재문 교수는 비뇨기과 서성일 교수와 함께 세계 최초로 한 번의 로봇수술로 두 개의 암(위암·신장암)을 동시에 수술하는 성과도 거둔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게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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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은 일반 수술과 다릅니다. 암 수술에서 재발은 목숨과 관련이 있습니다. 재발하면 수술이 소용없고, 재발하려고 수술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위암 수술은 주변 임파선 제거가 중요합니다. 안전거리를 두고 암 부위를 잘라내는 것만 생각하는데, 임파선에 퍼진 건 다른 문제입니다. 임파선이 큰 혈관 주변을 싸고 있어서 혈관을 다치지 않게 림프절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많은 경험과 숙련된 술기가 필요합니다. 조금만 절제하면 임파선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죠. 임파선으로 안 퍼졌다는 증거가 있어야 조금만 자를 수 있는데 임파선으로 안 갔다는 걸 확실하게 찾는 방법이 아직은 없습니다.

 

기존 위암 수술은 위를 다 절제하거나 조금만 남깁니다. 위가 없어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지만 삶의 질은 당연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암을 확실하게 제거하고 재발율도 높지 않으면서위를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치료법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율과 재발률에 차이가 없다면 누구라도 위나 위 기능을 보존하고 싶을 테니까요. 하지만, 배재문 교수의 말에 따르면위와 위 기능을 보존하는 수술은 아직까지 연구 단계라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위나 위 기능을 보존해도 암이 재발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암 수술은 재발률을 최소화하고 생존율은 올리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 수술을 원칙대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재발률이 올라갑니다. 사실 대한위암학회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제가 2004년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TFT 팀장을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표준 진료지침대로 수술하는 것이가장 확실하고 안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지키는 것이죠. 저는 말하자면 지금까지 학술적으로 인정된 가장 도움이 되는 근거를 가장 원칙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암 수술은 평생 한 번,

모두에게 100점짜리

수술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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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수술이라는 최첨단 트렌드를 말하다가, 주제가 다시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주제를 관통하는 기본 맥락이 있었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암 수술은 한 번입니다. 같은 암으로 수술을 두 번, 세 번 하는 건 아니죠. 저야 수없이 많이 시술하지만 환자로서는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입니다. 수술 후에 재발했다고하면 어느 환자가 좋아하겠어요. 모든 환자는 위를 남겨줬으면 합니다. 환자 말을 듣고 위를 많이 남겼는데 나중에 재발하면 당신이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의료는 거래가 아닙니다. 의사는 자기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제 기준은 생존율과 재발률입니다. 그리고 모든 수술에 제 역량의 100%를 쏟아 부어야죠.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70%를했는데 내일은 100%를 해야지, 이 환자는 특별히 부탁 받았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모든 환자는 한 번의 기회가 있고, 각자 모두에게 100점짜리 수술을 해야죠.

 

배재문 교수의 말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첨단 로봇수술에 매진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환자를 대할 때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죠. 전공의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위암만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던 배 교수가 개별 분과를 넘어 환자 자체를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습니다.

 

■■■“의사는 병이 아니라 환자를 보아야 합니다. 환자가 무슨 내과 환자가 있고 외과 환자가 있나요. 그냥 환자일 뿐입니다. 자기가 다루는 병만 본다면, 환자가 위암과 유방암, 대장암에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있다면 그 환자는 누가 보나요? 외과의사도 내과적인 부분을 알아야 하고, 내과의사도 외과적인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배재문 교수는 수술 후 영양관리에 있어서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한외과대사영양학회 창립 멤버로서 회장을 맡고 있기도 했습니다.  

 

■■■■“수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와 영양까지 포함해서 환자 전체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수술 전후의 대사과정과 영양공급에 관해 연구를 진행해서 수술 후 회복과 생존율을 향상시키려는것이죠. 외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데이터를 모으고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위암은 건강검진의 내시경 검사로 조기발견을 할 수 있고, 조기발견만 하면 치료성적이 좋아서 생존율이 높습니다. 조기위암은 생존율이 90%이고 위암 전체적으로도 70%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행암의 경우 아직 해결방법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암검진 프로그램에서 위암 검사 항목을 설계한 이가 바로 배 교수이니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물어봤습니다.

 

 

■■■■“위암 자체가 고약하다기보다는 진행암이 문제지요. 진행암은 뚜렷하게 좋은 치료법이 아직 없는 실정입니다. 진행암까지 가기 전에 조기발견해서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진행암 자체에 대해서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 새로 연구를 시작하기보다 젊은 의사들이 신기술을 익히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제 경험을 나눠주고말이죠. 제 개인보다는 우리나라 전체의 위암 치료 수준이 올라가도록 힘쓰고 싶어요. 그게 나이 먹은 사람의 역할이 아닐까요.

 

배재문 교수는 다들 어렵다고 하는 환자를 수술해서 별 합병증 없이 낫게 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명의 같은 호칭은 불편하다고 극구 손사래를 쳤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은 환자도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의술을 펼치려고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진할 뿐이고 말했습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원칙을 지키지만 거기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고, 정말 유용하고 필요하다면 편하고 익숙한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자기 욕심이 아니라 이후세대와 전체를 위해서 밑거름이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 수상한 시절에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의사다운 의사, 어른다운 어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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